FM영화음악 정은임의
차분하고 이지적이며 낭랑한 목소리의 아나운서 정은임 씨가 또박또박 <FM 영화음악>으로 발음하던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. FM영화음악에서는 영화와 감독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뤄줬다. 영화에 대한 정보에 굶주렸던 젊은 시절의 FM 영화음악은 영화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프로그램이었다.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 개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걸작이라고 소개하며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소개했다. 아나운서 정은임 씨의 목소리로 오렌지 핑크 화이트라는 이름을 부르며 실감나게 영화 장면을 소개해 주던 기억이 난다. 리버 피닉스 추모 방송을 해줬어 그가 출연한 영화와 영화음악을 틀어주었다. 그가 출연한 <아이다>의 ost를 듣자 가슴이 설렌다. 물론 나의 20대를 지배한 웡가위 감독도 해주었다. 원가위 감독을 다루는 날은 더 귀 기울여 들었다. 왕가위 감독은 촬영기법이 스타일리시할 뿐 아니라 영화음악도 감각적이었다. 그의 영화의 ost만 모아도 충분히 분량이 나오고도 남았다. '영화에 대해 알고 싶은 두 가지 세 가지 것들'이란 책을 펴내는가 하면, 영화 '장밋빛 인생'을 제작한 김홍준 감독이 출연하여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강의하는 코너도 있었다. 그가 나온 날은 노트와 볼펜을 준비해 메모를 하면서 듣고 있었다. 훗날 대학원에서 그의 <영상미학론> 강의를 듣게 되었을 때, 나 혼자만이 마음속으로 기뻤다. 김홍준 감독뿐 아니라 평론가들도 주례로 출연해 잘 알려지지 않은 걸작, 영화사의 중요한 영화들을 소개했다.
내 젊은 시절 같은 자리를 함께했던 추억의 라디오 프로그램 FM영화음악은 예전에도 있었고 그 뒤에도 있었는데 왜 유독 정은임 FM영화음악만 생각나는 걸까. 특히 그의 <FM 영화음악>에 마니아 팬이 많았던 것은 아나운서 정은임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. 영화에 대한 정성과 애정이 청취자들에게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. 슬프게도 그녀는 너무나 빨리 세상을 떠났다.